
제가 일본이나 중국같은 데서 보면은 논밭에는 무덤이 있고, 그리고 바로 집 옆에도 무덤이 있더라구요. 그런데 초안산도 말하자면 그런 형상인거에요. 동네 그 주택가 안에 지금 산이 있고, 어쨌든 공로 분들이 다 모여 있잖아요. 일본에서도 그렇고 중국에서도 그렇고 그런 무덤이 있는데, 사람들이 그 무덤과 함께 너무 편안하게 잘 살아가는 거에요. 그런데 초안산도 물론 월계동도 그 위치에 있었으니까 그냥 살았겠지만 예전에는 약간 분묘군 자체가 묘지고 그래서 사람들이 좀 혐오하고, 그렇게 많이 지나다니지도 않았다고 해요. 또, 6.25때는 창동 방어기지로서 총탄이 왔다 갔다 했던 장소여서, 폐허가 되고 비석들도 많이 쓰러져 있어 지금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정비를 하고 있어요. 어쨌든 사람이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의 그 중간 기점에 있는 곳이 바로 초안산인 거 같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이 곳에 오면 사람의 삶과 죽음은 백지장 한 장 차이처럼 발 하나 디디면 바로 죽음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곳이고, 발 하나 또 내디디면 삶의 공간으로 또 나오는 거잖아요. 그니까 인생이 산다는 것이 그런 거 같아요. 삶과 죽음은 진짜 자기 마음먹기 달렸기 때문에, 초안산에 오면 사람들이 그래 내 삶은 이곳에서 이렇게 사람이 어떻게 죽고 어떻게 되어있느냐... 또 나는 어떻게 또 이렇게 살아갈 것이냐... 그 권력이 막강했던 내시들도 이제 그런 상태로 무덤에 누워있고, 나도 결국 죽을 것이니 그 안에서 내가 죽는 날까지 어떻게 살 것인가... 그래서 좀 이제 이 마을을 찾았을 때, 초안산을 찾았을 때, 사람들이 삶에 대한 태도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그런 장소를 좀 찾아주셨으면... 그리고 또 힐링을 얻었으면 하는 생각이에요.

2. 기억제공자: 허종대 선생님, 인터뷰 중 발췌
초안산에 유명세가 다시 복원됐으면 좋겠어요.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가 옛날에는 전국 각처에서 이 초안산에 소원을 빌러 많이 사람이 찾아왔어요. 그 증거로 이 주변에 무인들이 무속인들 상당히 많이 기거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을 거에요. 그 분들을 상대로 해서 대신 빌어주는 역할을 했던거죠. 그러니까 어떤 소원을 빌고, 무슨 소망이 있고, 염원이 있던 사람들은 전국 각지에서 초안산을 찾아왔던 것입니다. 무속인이 많았다는 것은 빌러 오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을 알수 있어요. 다시 얘기하면 그거거든요~ 옛날에는 과거 제도가 있었잖아요. 시골에서 어려운 사람은 짚신을 신고, 그냥 바랑을 메고 걸어 오지만 양반이나 여유있는 사람은 말을 타고 거기와서 맡기고 와요. 장안에 못 들어 왔으니까... 그리고 거기다 말을 맡겨 놓고, 초안산을 들렀다는 구전도 있어요. 초안산을 왜요? 과거 급제해달라고 와서 빌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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