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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락산 보루

고구려 영토확장의 역사를

바라보다

수락산 보루 - 조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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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조은경 스토리텔링 트레커

수락산 보루

이곳은 수락산 보루사적 제 455호로 지정된 아차산일대 보루군 중 하나입니다. 보시는 것처럼 북한산과 상장능선 그리고 도봉산 포대능선너머 사패산까지 병풍처럼 펼쳐진 모습을 볼수 있는 천혜의 조망터이지요.

 

보루는 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쌓은 구축물로 산성에 비해 규모가 작은 군사시설을 말하는데, 수락산 보루는 출토되는 유물이나 축성방법 등으로 보아 삼국시대의 유적으로 고구려 관련 고고학적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고구려가 5세기 후반 한강 유역을 점령한 후 551년 신라와 백제에 의해 한강 유역을 상실하기까지의 역사를 밝혀주는 중요한 유적이라 할 수 있지요.

 

6세기 전반 한강 지역 방어의 중심기지 역할을 했던 아차산 주변에 무려 16개의 보루가 대개 400m정도씩 떨어져 구축되어 있어 만약 한 보루가 공격을 당하면 다른 보루들에서 적을 협공하는 식으로 운영됐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최단거리 교통로 확보를 위해 최소인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처럼 최단거리 교통로 확보로 이용한 보루는 광개토대왕의 아들인 장수왕이 실제로 활용하였는데 장수왕은 475년 개성을 거쳐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임진강변인 호로고루로 우회하면서 남하하기 시작했습니다. 호로고루는 임진강 하류에서 무릎정도 밖에 차지 않는 곳이라 배를 타지 않고 건널 수 있는 최초의 여울목이었어요. 여울목이란 강이나 바다에서 쉽게 건널 수 있을 만한 얕은 곳을 말합니다. 따라서 직선거리인 개성-장단-파주-고양 루트를 선택하지 않고 기마부대가 건널 수 있는 호로고루를 지나서 의정부-상계동-봉화산-아차산에 이른 뒤 한강을 장악한 뒤 한성백제인의 도성인 풍납토성을 공격하여 개로왕을 전사시켰습니다. 이 사건으로 고구려는 만주와 한반도에 걸친 광대한 영토에 결쳐 일대제국을 형성하여 중국과 자웅을 겨루게 되었습니다.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1,500년 뒤 1950년 6.25전쟁 발발 당시 북한군 전차부대도 개성에서 문산 쪽으로 직진하지 않고, 200km나 우회하여 호로고루 여울목을 통해 도하하여 서울을 점령했던 루트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보루는 국방상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곳입니다. 전망 좋은 이곳 수락산 보루에서 힘차게 말달리는 고구려 기마병의 모습을 상상해보시면서 호연지기를 기르는 시간도 가지기실 바랍니다.